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1.4 후퇴 (문단 편집) === [[중국]]의 참전 === 당시 [[마오쩌둥]]은 중국 최대 권력자였지만 아직 절대권력을 가지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고, 한반도 파병 문제는 마오쩌둥 한 사람이 내리기엔 너무나도 중대한 결정이었기 때문에 여러 차례 회의를 거쳐 결국 [[중국 인민지원군|중공군]] 파병이 결정됐다. [[동북아시아]]의 정세상 북한 존속은 중국에 필요했다. 일단 북한 정권이 무너지면, [[미국]]의 영향이 미치는 [[대한민국]]과 소련이 당장 국경을 맞대게 된다. 소련은 한반도가 남한에 의해 통일된다 해도 국가의 중심인 수도 [[모스크바]]와는 거리가 먼 구석 [[극동]] 지역이라서 조금 맞대도 별 상관없다고 생각했지만,[* 비슷한 예로 소련은 NATO 회원국인 [[노르웨이]]나 [[튀르키예]]와도 각각 북극권과 캅카스에서 국경을 조금 맞대고 있다.] 중국은 수도 [[베이징시]]가 한반도와 비교적 가까운 거리에 있어서 경계심을 심하게 느낀 것이다. 한국이야 어차피 최빈국이지만 이미 미국이 한반도에 개입할 의지를 분명히 드러낸 이상 통일한국의 미래가 어찌 될지는 몰라도 최소한 한국을 기반으로 미국과 직접 대치할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생기는 것은 확실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미국 지원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던 1950년대와 달리 지금은 한국의 국력이 중국에 비해 크게 열세라도 한판 붙을 능력은 되는 수준이니 더욱 통일을 바라지 않을 수밖에 없다. 미국에서 배를 타 상륙을 거쳐 이동하는 것과 처음부터 한국에서 이동하는 것은 엄청난 차이이다.] 또한 공산당이 국공내전에서 승리해 신생 공산정권이 창출된 중국으로서는 파병할 경우 국가의 안정을 달성할 수 있었다. 당시 중국 지도부 내에서는 [[국공내전]]으로 황폐화된 상황에서 [[미국]]과 전쟁을 벌이는 것은 무모하다는 반론이 압도적이었지만 [[펑더화이]]가 한반도 출병을 '중국 공산혁명의 연장'으로 보자고 주장하면서 찬성표를 던짐으로써 지도부의 마음을 찬성 쪽으로 돌려놓았다. 중국은 소련의 원조를 획득할 수도 있었으며, [[아시아]] 내에서 중국의 역할이 증대되는데 이는 곧 국제사회에서의 지위 향상을 뜻하는 것이었다. 마오쩌둥은 '입술([[북한]])이 없으면 이(중국)가 시리다'는 [[순망치한]] 이론을 내세워 한반도 파병을 결정한다. 사실 중국이 한반도 파병을 한 또 다른 원인으로는 미국에 대한 중국의 적개심을 꼽을 수도 있다. [[국공내전]] 때부터 [[장제스]]를 열심히 지원했던 미국에 대해 중국 지도부가 좋은 감정을 가지고 있었을 리 없었다. 특히 미국은 1950년 1월 트루먼의 새해담화를 통해 [[http://hermod.egloos.com/2143640|타이완 문제에 대한 중립론을 주창]]했음에도 6개월 후 한국전쟁이 발발하자마자 즉각적으로 [[https://www.mk.co.kr/news/culture/view/2013/06/489746/|타이완 해협을 봉쇄]]한 데 이어 [[https://news.joins.com/article/1457116|타이완의 일본 귀속을 검토]]하기까지 했다. 이를 통해 중공에 대한 미국의 '중립' 공약은 공수표로 전락했고, 중공과 미국의 관계는 틀어져 단시간 내에 회복이 쉽지 않았고, 이 상황에서 중공의 국가이익을 찾을 방향으로 한반도가 선택된 것이다. 1950년 5월 [[하이난]] 섬이 공산군에게 점령된 이후 중국 공산당의 마지막 목표는 국민당 정부가 버티고 있는 타이완 섬이었는데,[* 티베트가 아직 중공에 편입되지 않았지만 티베트는 이때까진 중국과는 따로 놀고 있었다. 국민정부 시절부터 은근슬쩍 중화민국에 편입시키려고 했다.] 하이난까지는 기습적인 물량공세로 어떻게 점령에 성공했지만 타이완은 국부군의 밀도도 밀도거니와 미국의 해협봉쇄까지 겹쳐 답이 없었다. 이 상황에서 대만 진공을 강행하는 것도, 포기하는 것도 마오의 입장에서는 부담스러운 일이었고, 항미원조는 타이완 진공을 '''영광스럽게''' 포기할 수 있는 좋은 패였다. 파병 지휘관은 [[펑더화이]]와 [[쑹스룬]]이 임명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